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와 같은 사탄을 없애지 않고 두시는 것일까요? 파우스트 메피스토, 욥기의 사탄 두 책에서 볼 수 있는 신과 사탄의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욥기에서 사탄과 대화를 합니다. 심지어 사탄으로 하여금 인간을 시험하게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뜻을 이해하고 온전히 내 것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리를 알게 됩니다. 진리를 아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진리 속에서 자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해봅시다.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차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아셨을 텐데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류의 죄의 시발점을 만드셨을까?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면서, 이때문에 남성으로 대표하는 아담은 평생 땀을 흘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는 기회를 마치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여성을 대표하는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후 아이를 낳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각하시기에는 – 선악과 사건이 없었다면 – 아이를 어떻게 낳도록 계획하셨던 것일까요? 모든 것이 궁금하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기에는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하는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자비의 증거로서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이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기보다는 인간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선을 선택하든, 악을 선택하는 선택하는 자유를 주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강요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악을 통해서 인간의 선한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악도 선의 일부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거나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에서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적도록 하셨다.
닉이 생각하는 가장 선한 사람 마더 테레사와 가장 악한 사람인 히틀러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명함 뒷면의 꼭대기와 맨 아래에 써놓게 하고 닉이란 사람은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위치에 둘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셨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도덕의 기준은 시어스타워(윌리스타워, 시카고 일리노이) 100층 높이에 있는데 하나님이 그 위에서 내려다보시면 명함 크기의 높이라는 것은 둘 다 같은 죄인이며 하나님으로 멀리 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악이 계속 생겨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행동을 반성하고 선한 행동으로 바꾸어 가는 노력을 계속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는 길을 잃지 않는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파리대왕에서 무인도에 난파된 영국 소년들이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나중에 서로에게 잔인하게 변해갑니다. 야만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명과 단절되어 있으니 무엇이 옳은지 점차 잊게 된것을 생각해봅시다. 결국 그들에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바로 잡아 줄 나침반이 없었다는 것처럼 인간의 세계도 같습니다. 사람들이 신과 단절되어 자신들이 저지른 큰 죄에 대한 감각이 마비돼 버리는 상황이 파리대왕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하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치 내 의지로 믿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 믿겠다는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의지로 믿고 내가 믿고 있으니 복을 주옵소서 하는 기복 신앙 성격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자녀로서 그가 주신 마음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과 연합할 때 자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셨을까?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과 악한 생각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급기야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지만, 은혜로운 눈으로 노아를 선택하시고 그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방주를 만들어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각종 동물들을 구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신 이유는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은혜와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을 함께 나타내신 사건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노아와 같이 선택받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무서움으로 경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과 연합하여 살아갈 때,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서 자신감과 평안과 기쁨을 가지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삶의 변화와 이웃 사랑과 선한 영향력을 주변에 미치며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파우스트 메피스토, 욥기 사탄 등 귀신을 박멸하지 않으신 이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과 귀신을 완전히 박멸하셨다면 이렇게 전세계가 그들 때문에 고통 가운데 살지는 않았을 것을 왜 사탄을 남겨두셨을까? 심지어 사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일텐데, 사탄은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인간에게 죄를 유혹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처벌하셨지만 완전히 없애진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통해 선을 돋보이게 하고, 선하게 사는 인간의 노력을 귀중히 여기시고, 이를 통해 인간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기도 합니다.
저는 사탄이라하면 사탄에게 영혼을 판 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고전소설 괴테의 파우스트가 생각납니다. 파우스트는 욥기의 욥과 같은 사람으로 욥이 겪은 일과 비슷한 상황이 펼져집니다. 메피스토펠레스(사탄, 이하 메피스토)이 하나님에게 왜 인간에게 제대로 쓰지도 못할 ‘이성’을 주셨냐고 비아냥 거립니다. (욥기에서는 사탄이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가 부유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부와 행복을 빼앗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거라 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의 재물과 가족을 빼앗아보라고 허락합니다.)
파우스트에서도 하나님은 이런 메피스토의 비아냥에 파우스트가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사탄은 아주 비웃으며 하나님이 허락만 하면 내가 타락시키켜도 되냐고 물어봅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인간이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라며 메피스토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둡니다.
아무리 충동에 휩싸여도 선한 인간은 올바른 길을 잃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평생 진리를 찾다가 결국 알아낸 것이 ‘인간의 한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평생을 진리를 찾았지만 종의 한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메피스토가 등장하여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저는 악입니다. 선을 만들어내는 존재지요.
그렇습니다. 빛이 있으라 했을 때, 빛이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둠과 빛은 모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밤이 악이고 낮이 선이 아닌것처럼 말이지요.
메피스토는 평생을 진리를 찾다가 좌절해버린 파우스트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나 악마가 당신에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쾌락과 경험으로 만족시켜줄테니 당신이 이렇게 얘기하는 순간 내가 영혼을 가져갈 것이다.’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는 돈과 명예,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 권력 등 아무리 네가 나에게 준다 할지라도 나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며 장담했지만 메피스토의 능력으로 젊음을 되찾자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첫번째 여자 그레트헨을 만나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레트헨의 부모를 죽이고 오빠를 죽이고 결국 그레트헨도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레트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를 사랑하고 파우스트의 죄까지 안고 죽게 됩니다. 악마는 그녀에게 심판받았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녀는 구원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메피스토가 말한 ‘그는 심판받았다’와 신이 말한 ‘그는 구원받았다’는 독일어로 철자가 거의 흡사하다는 점에서 심판과 구원은 개인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사소한 차이 뿐이다 정도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번째 여자는 헬레나입니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도움으로 황제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간척사업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선량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죄는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그가 말합니다.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진정 현재에 만족해서 그런말을 한 것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모습을 예찬하고자 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이 말을 하면 메피스토가 자신의 영혼을 가져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으로 그 말을 한 것.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는 선택. 그것이 신이 그를 구원한 이유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도전한 인간으로서 신의 용서를 받고 역시 구원받고 천국으로 승천합니다.
만약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그만큼 덜 완전한 것이 될 것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
인간은 선으로 가는 길을 잃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왔던 그 모든 것이 정답이 될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그 불완전함마저 이해하고 사랑으로 포용하시는 완전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